줄거리
요시히데라는 화가가 살았다. 당대 최고의 화가로 알려졌고 그에 걸맞게 '신이 내린 그림 실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행동이 괴팍하고 야만 스러웠기에 '원숭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의 슬하에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름답고 똑똑하고 효심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해당 지역의 영주는 그런 요시히데의 딸을 배려하여 자신의 궁에서 일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즈음 영주가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요시히데는 영주에게 딸을 돌려달라고 매일 같이 간청하였다. 이에 영주는 요시히데에게 지옥을 그려오면 딸을 돌려주겠노라 하였다. '신이 내린 그림 실력'으로 명성이 자자한 요시히데였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오롯이 직접 본 것만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시히데는 지옥을 직접 볼 필요가 있었다. 요시히데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죄인을 그리기 위해 부엉이로 자신의 제자를 공격하게 하였고 쇠사슬로 결박한 제자 앞에 독사를 풀었다. 그 즈음 요시히데의 딸은 점점 수척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원숭이 한 마리가 글의 화자 앞에 나타나 요시히데의 딸이 머무르고 있는 방을 가리킨다. 방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자마자 괴한이 얼굴을 가리고 도망갔다. 요시히데 딸의 옷은 흐트러져 있었다. 사건이 있고 보름 정도 후에 요시히데는 영주를 찾아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귀부인이 탄 마차를 불태워달라 말한다. 영주는 요시히데의 딸을 마차와 함께 불태운다. 요시히데는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었고 원숭이 한 마리가 딸에게 뛰어들어 함께 불탄다. 요시히데는 황홀경에 빠져 무아지경으로 지옥을 그린다. 주위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엄숙함, 경외심을 느꼈다. 완성된 그의 그림은 그의 행적을 비난하던 스님 마저도 인정할 정도 였다. 요시히데는 그림이 완성된 다음 날 자살 하였고, 요시히데의 그림이 점차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갈 즈음 그의 무덤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등장인물
요시히데 : 작품의 주인공. 당대 화가로서 최고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심성과 품행이 고약한 것 때문에 작중 인물들의 평가가 좋지 않다. 이를 빗대기 위해 작중에서 그를 표현하는 이명 중 원숭이가 있다.
호리카와의 영주 : 작중의 배경이되는 영지의 이름이 호리카와다. 해당 인물은 영지 내 권력자이며, 서술된 대로 표현하자면 훌륭한 인품을 가진 성인군자다.
요시히데의 딸 : 작중에 딸의 이름은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다. 요시히데와 비교되어 그 인성, 품행의 올바름이 강조되며, 요시히데가 유일하게 정을 쏟는 인물이다.
원숭이 : 작중 괴롭힘당하던 중에 요시히데의 딸에게 거두어져 길러진다.
화자 : 영주를 모시는 관리.
총평
지옥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예술은 미쳐야 가능하다' 가 될 것이다. 지옥변의 저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한 말 중 "비상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선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 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을 본다면 축약된 문장의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등장인물 이사라를 보면 될 것이다. 작중 이사라는 마약에 찌든 화가로, 약에 취해 그린 그림이 사회적으로 더 인정 받는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창의력과 영감을 받는 다는 것은 신에게서 받는 무언가 혹은 광기의 산물로 여겨졌다. 이는 뭉크의 절규, 반 고흐의 자화상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납득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드러내는 광기와 그로인한 예술성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좋은 예술이라면 그것을 감상하는 이의 감성과 그것을 통해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려 시도하는 이성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기술에는 대표적으로 철학의 망치가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것은 기존의 가치관을 부수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것에 뒤샹의 샘이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 철학의 망치가 무엇을 부수었고 어떤 것을 새롭게 하였는지 확인하면 충분할 것이다. 먼저 부숴진 것은 요시히데와 그의 딸과의 관계다. 자신의 딸이 불타는 것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륜을 부순다. 이제 이를 통해 독자가 알 수 있거나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가치관이 무엇이냐를 확인해야 한다. 작중 그 후 등장하는 것은 그의 그림에 대한 인정 밖에 없다. 즉, 이 작품은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부수기는 했고, 그 뿐이다. 우리가 새롭게 여겨야 할 것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해 행해지는 모든 것을 예술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어떠한 유의미한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