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줄거리
내용 1993년 프랑스에서 한 남자가 부모, 아내, 아이들을 살해하고 본인의 집에 불을 지르며 자살을 시도한다. 남자의 자살은 미수에 그쳤고 의식 불명상태에서 회복하고 재판을 받는다. 화자인 엠마뉘엘 까레르는 이 사건을 접하고 사건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가해자 장클로드 로망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화자는 그 답장이 오지 않는 기간 동안 <겨울아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장클로드라는 인물을 잊어간다. 2년이 지나고 1995년 화자는 로망의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화자는 그의 재판을 방청한다. 장클로드를 만나고 그의 친구를 만나며 화자는 장클로드를 서서히 서술해간다. 그 서술의 중심에는 적이 있다. 성경의 적은 거짓을 말하는 자 라고 되어 있다. 화자가 그리는 장클로드는 거짓에 억압당한 인물이다. 그의 거짓말은 실제의 자신이 아닌 또다른 자아를 만들어냈고 평생 동안 해온 거짓말이 들통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유예했고 위기는 심화 되어 갔다.
장클로드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짓을 말 했다. 직업, 소속, 관계 모든 것이 거짓으로 이루어진 것 이었다. 의대 진급 시험에 합격한 것,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거짓 이었다. 단순한 전화 한 통으로도 충분히 드러날 수 있는 거짓이었지만 누구도 단순한 전화 조차 하지 않았다. 그 모든 거짓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위기 속에서 장클로드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죽였다.
<겨울아이>의 배경
<적>을 읽다보면 화자인 엠마뉘엘 카레르가 어떻게 <겨울아이>를 쓰게 됐는지 나오고 있다. 작품의 첫 시작에서 글의 서술이 조금은 작품 밖에서 진행된다는 언지를 주고 중반으로 들어설 즈음 엠마뉘엘 카레르가 등장하여 장클로드에게 쓰는 편지가 나온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작가로서 장클로드가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엠마뉘엘 카레르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그리고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눈 쌓인 숲 속을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는 남자의 이야기, 7년간 제대로 끝맷지 못한 채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어 쓰기 시작했고 글은 눈 속을 방황하는 살인자 아버지를 중심으로 구성 되었다.
처음 엠마뉘엘 카레르가 장클로드를 만나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는 장클로드의 범죄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엇너 어떤 힘에 의한 것으로 극한까지 내밀린 사람의 행위라고 생각했기에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제안을 거절 당하고 집필한 <겨울아이>도 동일한 맥락을 공유하지 않나 싶다. <겨울아이>의 화자는 니꼴라라는 어린아이다. 그 아이의 주변 상황이 암시하는 비극이 존재하는데, 그 암시를 거름 삼아 아이는 불행한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불행 속에는 항상 본인이 있다. 그 불행을 상상하고 자책감을 느끼고. 어린아이인 니꼴라가 어찌하지 못 하는 상황으로 점점 내몰리며 극으로 치닫는 상상이자 현실로 담담히 들어간다. 본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기에 그저 받아들일 뿐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장클로드를 통해 알고자 한 것을 <겨울아이>를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종합
<겨울아이>와 마찬가지로 <적> 역시 별거 없어 보이는 일상을 허물어 뜨리는 작가의 솜씨를 여실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적>의 경우 그런 작가의 명징하고 간결한 문장이 조금은 주춤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적>의 모티브가 되는 장클로드 로망의 기이한 행적과 살인은 1993년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실화다. 가짜 의사, 사기꾼, 일가족 살해자. 작가가 하고자 한 것은 다큐멘터리, 소설, 보고서와 같은 것도 아니다. <적>에 나와있듯 그는 장클로드 로망의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을 알고 싶어했고 그것에 관해 글을 쓰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집필 시기가 겹치는 <겨울아이>와 <적>은 그 일련의 주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적>을 통해 그의 의도를 명징하게 알리기 위해, 보고서와 다큐멘터리와 같은 것이 아닌 그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등장시킨다. 이는 일인칭 화자이면서 삼인칭으로 장클로드를 관찰하기에 독자 역시 엠마뉘엘 카레르와 마찬가지로 그를 관찰할 수 밖에 없다. 사건의 발단, 이유, 방법, 경찰 조사, 재판과정, 살인자와의 만남, 살인자 주위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살인자 과거의 재구성 등을 통해 우리는 살인자에게 감정 이입과 심리 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엮여져 <적>은 1993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한 단순 보고서를 넘어서는 구성을 가지게 되었다.